홍콩의 밤은 여전히 화려하지만, 그 조명 뒤에 가려진 고층 아파트 단지는 지금 거대한 상흔을 입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최근 발생한 홍콩 북부 타이포(Tai Po) 지역의 왕폭코트(Wang Fuk Court) 화재 현장은 현대 고층 밀집 주거지의 안전망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11월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단지에서 불이 났다.


현지 주민의 비통한 증언 화재 현장에서 만난 주민 윙(Wing, 45) 씨는 그날의 기억에 몸을 떨었다. "새벽 2시경 타는 냄새에 깼을 땐 이미 복도가 검은 연기로 가득했습니다. 복도 끝에 있는 스프링클러 아래로 달려갔지만,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어요. 6개월 된 손녀를 찾던 노파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라고 사고 당시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 등 핵심 소방 시설 상당수가 관리 부실로 인해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기계적 결함이 아닌, 누적된 관리 태만이 부른 '예고된 참사'였다.

대나무 비계와 가연성 그물망이 고층을 감싼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홍콩 특유의 대나무 비계(Bamboo Scaffolding)와 외벽 공사용 플라스틱 그물망은 이번 화재를 7개 동으로 순식간에 확산시킨 주범이었다. 전문가들은 "공사 현장의 플라스틱 그물망에 붙은 불꽃이 대나무 비계를 타고 수직으로 상승하며 거대한 화염의 벽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창문 보호용으로 부착된 가연성 폴리스티렌 폼 패널은 불길이 건물 내부로 침투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홍콩 왕폭코트 아파트 화재현장(사진=한국안전뉴스)


홍콩의 비극을 지켜본 인근 마카오는 이미 강력한 법적 방어막을 구축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은 마카오의 제15/2021호 법률 ‘건물 및 시설의 방화 안전 구조’(Legal Regime for Fire Safety in Buildings and Venues)이다.

권한과 책임의 명확한 분리 (마카오 법 제70조) 마카오는 기존의 모호했던 소방 안전 관리 주체를 명확히 했다.
법률 규정을 살펴보면 비고정 물체(가구, 쓰레기 등)는" 소방국(Fire Services Department)이 직접 단속하고 즉시 처분권을 가진다.", 그리고 고정 구조물(불법 개조된 철문 등)는 토목건축국(Land and Works Bureau)이 담당하되, 소방국과의 실시간 공조 체계를 가진다"라고 법제화했다.

이러한 법률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징벌적 과태료를 보다 강화했다. "안전 비용보다 벌금이 더 무섭다" 마카오 법률은 소방 통로를 폐쇄하거나 안전 시설을 방치할 경우 최대 MOP 200,000(약 3,300만 원)의 과태료를 즉시 부과한다. 이는 홍콩의 솜방망이 처벌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제도 개선 이후 마카오의 대형 화재 발생률은 현격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획취재팀은 이번 홍콩 참사와 마카오의 선진 사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소방 안전을 위한 3단계 로드맵을 제안한다.

첫째, 이번 사고에 대한 조사하기 위하여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조사’ 가 필요하다. 홍콩 화재 후 현황파악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소방 시설 미작동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화재 조사 과정에 민간 전문가와 법률가가 참여하여 관리 주체의 과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홍콩화재에 대한 ‘세미나 및 공청회’를 통한 거버넌스 구축으로 공감대 구성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방 점검은 점검업체에 의한 형식적인 요식 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분기별로 '고층 건축물 안전 거버넌스 공청회'를 열어, 입주민-관리단-소방 전문가가 함께 노후 시설 교체 비용 분담과 안전 대책을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의 장을 마련해야 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고층건물 화재예방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 및 법률 개선’이 필요하다.

스프링클러 등 필수 시설의 점검, 허위 기재, 스프링클러 차단행위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형사 처벌 수위를 상향하는 등 소방관련 법률을 강화해야 한다.

홍콩 왕폭코트의 비명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다. 홍콩화재는 바로 지금이 대한민국 ‘안전 골든타임’ 이라고 알려주는 사례이다. 화려한 도시의 외관에 취해 내부의 썩은 안전 고리를 외면한다면, 그 비명은 조만간 우리의 거실에서 들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이제 사고조사-소통-입법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 제2의 홍콩 화재를 막는 길은 오직 '기본으로의 복귀'와 '강력한 법적 통제'뿐임을 명심해야 하며 대한민국은 침묵하는 안전에서 행동하는 안전으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