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낡은 도심, 홍콩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기괴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거대한 고층 빌딩 전체를 격자무늬로 촘촘히 에워싼 대나무 비계(Bamboo Scaffolding)와 이를 덮고 있는 거대한 천막들이다. 지난 11월 26일 왕폭코트아파트 화재 당시, 이 수직의 대나무 숲은 아름다운 전통 공법이 아닌, 화마를 건물 전체로 실어 나르는 '불길의 고속도로'가 되었다.

본지 취재팀은 현장 조사를 통해 홍콩 아파트 외벽을 둘러싼 위험 요소들이 어떻게 연쇄적인 폭발력을 갖게 되었는지 그 실태를 분석했다.

홍콩 아파트 외벽을 둘러싼 비계설치장면(사진=한국안전뉴스)


대나무 비계는 전통의 지혜인가, 거대한 땔감인가?

홍콩은 세계에서 드물게 고층 빌딩 건설 및 보수에 여전히 대나무 비계를 고집하는 도시다. 철제 비계보다 가볍고 유연하며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하지만 화재 상황에서 이 대나무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변한다.

현장에서 확인한 대나무들은 수개월간의 공사 기간 동안 햇빛에 바짝 말라 있었다. 건조된 대나무는 불이 붙는 순간 순식간에 화염을 머금고, 대나무 마디 사이의 공기층이 팽창하며 '펑,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몽콕 화재 당시 저층부에서 시작된 불길이 불과 몇 분 만에 옥상까지 번질 수 있었던 것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던 수천 개의 대나무 장대가 거대한 땔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가연성 보호 천막은 유독가스를 뿜어내는 '불의 장막'

대나무 비계를 덮고 있는 초록색 혹은 파란색의 보호 천막(Nylon Mesh/Sheeting)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공사 현장의 먼지와 소음을 막기 위해 설치된 이 천막들은 대부분 가연성 플라스틱 소재(나일론 또는 PVC)로 제작되어 있었다.

이는 불길이 천막에 닿는 순간, 천막은 녹아내리며 인근 대나무와 실내로 불똥을 떨어뜨렸다.

플라스틱 소재가 타면서 발생하는 진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는 건물 안으로 침투했다. 몽콕 화재 희생자 대부분이 불에 탄 흔적보다 질식으로 인한 피해가 컸던 이유는 바로 이 '장막'이 뿜어낸 유독성 물질 때문이었다.

외벽 스티로폼 설치는 건물을 감싼 '고체 휘발유'와 같다.

취재팀은 건물 외벽 보수 과정에서 사용된 단열재와 마감재도 조사했다. 충격적이게도 일부 노후 아파트 보수 현장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비면성 스티로폼(EPS) 보드를 외벽에 설치하고 있었다.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벽면에 부착된 스티로폼은 대나무 비계와 천막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자 이 공간은 마치 거대한 '굴뚝'처럼 변했다. 대나무가 타오르며 발생한 열기가 스티로폼을 녹였고,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불붙은 스티로폼은 소방관들의 진입조차 가로막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건물 전체에 고체 휘발유를 바르고 그 위에 덮개를 씌워둔 격"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취재시 스티로폼이 타면서 화염이 유리창을 깨고 실내로 유입하여 화재를 더욱 키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좁은 이격 거리로 인접 건물로 전이

홍콩의 좁은 건물 간격은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한데 묶어 최악의 시너지를 낸다.

외벽과 비계 사이의 좁은 틈은 굴뚝 효과(Stack Effect)를 발생시켜 열기가 위로 치솟는 강한 상승기류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불길은 수평보다 수직으로 훨씬 빠르게 이동한다.

몽콕처럼 건물 사이가 불과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는, 한 건물의 비계에서 발생한 불길이 옆 건물로 옮겨붙는 것이 순식간이다. 이번 화재에서도 인근 상가 건물의 차양막이 비계에서 떨어진 불똥에 타버리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홍콩 아파트 외벽을 둘러싼 비계설치장면(사진=한국안전뉴스)


'전통'을 넘어서는 '안전'의 재정립

홍콩의 풍경을 상징하는 대나무 비계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지만, 안전을 위한 제도적 보완은 시급하다.

가연성 나일론 천막 대신 불꽃에 견딜 수 있는 난연 가공 처리된 천막 사용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현재 홍콩 법규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도 난연성 보호막 의무화가 시급히 필요하다.

고층 공사 시 비계 중간층마다 임시 소화기나 간이 스프링클러 배관을 설치하여 초기 발화 시 비계 자체가 타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국의 제천 화재나 영국 그렌펠 타워 참사 이후 세계적으로 금지 추세인 가연성 외벽 단열재에 대해 홍콩 정부도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노후 아파트 리모델링 시 대나무 대신 철제 비계를 쓰지만, '가연성 보호 천막'과 '드라이비트(스티로폼 외벽 마감)'의 조합은 홍콩과 매우 흡사한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도심 밀집 지역의 공사 현장은 홍콩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철저한 지도 점검이 필요하다.

홍콩의 밤을 밝히던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서, 대나무와 플라스틱 천막은 소리 없는 위협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비용이 싸니까", "원래 해오던 방식이니까"라는 변명 속에 숨겨진 안일함이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앗아갔다. 잿더미가 된 대나무 비계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안전을 담보로 한 전통과 효율은 결국 비극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홍콩의 야경(사진=한국안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