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천안 이랜드패션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 대한 합동 감식이 사실상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기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사건의 원인 규명은 단순한 사고 처리를 넘어, 미래의 대형 물류 시설 안전을 위한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참여한 합동 감식 결과에 따르면, 최초 발화 지점은 3층 동편 끝 지점으로 확인되었으며, 전기적 요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가장 큰 무게가 실리고 있다. CCTV 분석 결과 방화나 실화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발화 지점 인근에서 다수의 콘센트와 업무용 컴퓨터 등이 확인된 점이 이 같은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천안 이랜드 패션 물류센터 화재 사고


정확한 원인 진단 없이는 올바른 대책도 없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환자를 진단하는 의사의 역할과 같다. 병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야만 비로소 효과적인 치료법을 처방할 수 있듯이, 물류센터 화재 역시 '전기적 요인'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넘어, 어떤 형태의 전기적 결함(단락, 누전, 접촉 불량 등)이, 어떠한 환경적 요인(설비 노후화, 과부하, 관리 소홀 등)과 결합하여 대형 참사로 이어졌는지를 정밀하게 밝혀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만약 단순한 과부하가 원인이었다면 전력 관리 시스템과 운영 기준을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할 것이고, 특정 장비의 결함이었다면 해당 장비의 안전성 검증과 교체 주기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화재 발생 후 피해를 키운 연소 확대 요인들(가연성 적재물, 건물의 구조적 문제, 소방 시스템의 작동 여부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뒷따라야 한다.

이번 화재 조사 과정에서 제기된 화재 발생 한 달 전 소방 점검에서 30건의 불량 사항이 지적되었다는 보도는, 단순한 발화 원인 규명을 넘어 화재 예방 및 관리 체계의 총체적 부실 가능성을 시사한다. 초기 진압 실패와 급격한 연소 확산의 배경에는 이러한 관리 소홀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전기적 요인"이라는 원인 규명과 함께, 안전 관리의 미흡함이 구조적인 문제였는지 여부 또한 명확히 진단해야 한다.

원인조사 결과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의 방향

정확한 원인 진단이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물류센터 화재 예방 및 대응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류센터는 대량의 상품이 적재되는 특성상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에 제기된 전기적 요인에 대한 통제 강화가 최우선이다.

물류센터와 같이 전력 사용량이 많고 장시간 가동되는 시설에 대한 전기 배선, 콘센트, 연결 장치 등에 대한 특화된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정기적인 발열 감시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화재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전기 지게차, 자동화 로봇 등의 충전 구역을 분리하고, 충전 중 과열 감지 및 자동 차단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축구장 27개 면적에 달하는 거대 물류센터의 경우, 일반적인 소방 시설 기준으로는 급격한 화재 확산을 막기 어렵다.

화재가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화 구획을 더욱 촘촘히 나누고, 내화 성능이 높은 건축 자재 사용을 의무화해야 한다.

천장이 높고 적재물이 많은 물류센터의 특성을 고려하여 조기 반응형 스프링클러, 고압 미분무 소화 설비 등 대형 화재에 특화된 소화 시스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화재 예방은 설비뿐만 아니라 사람과 제도에 달려있ㄷ다. 소방 점검 지적 사항이 실제 시정 조치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소방안전관리자가 화재경험이 있는 자가 지적 사항을 보고하고 시정하는 전 과정에 대한 기록 의무를 강화하고 해야 한다.

소방훈련은 물류센터 근무자를 대상으로 화재 초기 진압 및 대피 훈련을 정례화하고, 관할 소방서와의 합동 대응 훈련을 의무화하여 실전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미래를 위한 안전 투자

이랜드 물류센터 화재는 단순히 한 기업의 손실을 넘어, 대한민국 물류 시스템 전체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물류는 현대 산업의 핵심 동맥이며, 그 동맥이 멈추면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조사 당국은 발화 원인에 대한 '전기적 요인' 규명을 넘어, 연소 확대 과정과 안전 관리상의 구조적 문제점까지 명확히 해명해야 한다. 또한, 이 결과를 토대로 정부와 기업은 물류 시설 안전을 위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이 올바른 처방의 시작이듯, 철저한 조사만이 미래의 대형 물류센터 화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번 사태가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원칙을 제도와 현장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감식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