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홍콩 타이포(Tai Po)의 고층 아파트 단지 '왕폭코트(Wang Fuk Court)'에서 발생한 화재는 1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며 홍콩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뼈대만 남은 건물과 함께 홍콩 소방 행정의 총체적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반면, 지척에 위치한 마카오는 비슷한 노후 건축 환경 속에서도 대형 화재 사고 없이 정적을 유지하고 있다. 본지는 홍콩 참사의 결정적 원인이 된 소방 시설 무력화 실태를 파헤치고, 마카오가 구축한 '안전망'의 실체를 심층 분석했다.

왕폭코트 참사 현장에서 생존자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왜 스프링클러는 터지지 않았고, 경보음은 들리지 않았는가?" 조사 결과, 이는 우연한 고장이 아니라 인재(人災)에 의한 '예고된 침묵'이었다.

현장 감식 결과, 화재 당시 아파트 전 층의 스프링클러 배관에는 단 한 방울의 물도 흐르지 않았다. 원인은 허망했다. 건물의 외벽 보수 공사를 맡은 업체가 공사 중 배관 파손으로 인한 수침 피해를 방지하고, 용접 작업 중 발생하는 열기에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할 것을 우려해 옥상 수조와 연결된 메인 OS&Y 밸브를 완전히 잠가버린 것이다.

더욱이 화재를 감지하면 강력한 수압으로 물을 밀어 올려야 할 소방 펌프는 '수동(Manual)'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다. 관리 사무소는 펌프 소음으로 인한 주민 민원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자동 기동 시스템을 상시 꺼두었으며, 제어반 전원마저 차단된 상태였다. 화재 초기, 열기에 의해 스프링클러 헤드는 정상적으로 터졌으나 배관 속에 고여 있던 소량의 공기만 빠져나왔을 뿐, 불길을 잡을 물은 공급되지 않았다.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어야 할 화재 경보 시스템은 이미 '식물 상태'였다. 보수 공사 과정에서 전선이 노출되어 단선된 구역이 허다했으나, 보수 업체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이를 방치했다. 수신반(Control Panel)에는 수개월 전부터 '회로 단선(Open Circuit)'과 '기기 오류(Fault)' 메시지가 수백 건 쌓여 있었지만, 경비 인력은 이를 시끄러운 오작동으로 치부하고 '음소거(Silence)' 버튼을 눌러 시스템을 강제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불길이 현관문을 뚫고 들어올 때까지 상당수 주민은 화재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홍콩이 비극에 휩싸인 사이, 마카오의 소방 안전 체계는 강력한 법적 강제성과 기술적 보완책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마카오가 홍콩보다 안전한 이유를 세 가지 핵심 동력에서 찾는다.

① 자재의 혁명: 가연성 물질의 원천 차단

홍콩 왕폭코트에서 불길을 삽시간에 상층부로 옮긴 주범은 외벽의 '대나무 비계'와 '나일론 그물망'이었다. 하지만 마카오는 이를 철저히 규제한다.

마카오 소방국(CB)과 토목공정실험실(LECM)은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보호망에 대해 '자기 소화성' 테스트를 거치도록 강제한다. 불꽃이 닿아도 불길이 번지지 않고 4초 이내에 스스로 꺼져야만 현장 반입이 가능하다.

마카오 당국은 건설사가 제출한 서류만 믿지 않는다. 소방관들이 불시에 현장을 방문해 설치된 그물망의 일부를 잘라 직접 불을 붙여보는 현장 검증을 실시한다. 기준 미달 시 즉각적인 공사 중단과 함께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된다.

마카오 아파트 공사현장에 설치된 자기소화성 보호망(사진=한국안전뉴스)


② 2024년 신(新) 소방방재구조법의 위력

마카오는 2024년 12월부터 시행된 개정법을 통해 소방 시설 관리를 '권고'가 아닌 '강력한 의무'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홍콩처럼 공사 편의를 위해 소방 밸브를 임의로 잠그는 행위는 마카오에서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중범죄'로 다스려진다. 소방 시설을 정지시켜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 반드시 소방당국에 사전 신고하고 현장에 소방 안전 요원을 24시간 배치하는 등 대체 안전 조치를 완료해야 한다.

마카오의 신축 및 대형 건축물은 소방 시설의 상태를 정부 통합 관제 센터와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도입 중이다. 밸브가 잠기거나 펌프 전원이 꺼지면 소방국 상황실에 즉각 경고등이 켜진다.

③ 관리 주체의 책임 의식: '처벌'보다 무서운 '상시 점검'

마카오 정부는 '시설 수용 원스톱 사무소'를 통해 건물의 설계 단계부터 소방관을 참여시킨다. 소방 시설의 위치와 유지보수 편의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아예 준공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또한, 연 2회 이상의 정기 점검 결과를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며, 불합격 판정을 받은 건물은 보험 갱신이 불가능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홍콩 왕폭코트 참사는 "설비가 있어도 관리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홍콩이 공사 효율과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소방 밸브를 잠그고 경보를 껐을 때, 마카오는 '불연재 사용'이라는 기본 원칙을 고수하고 법 집행의 칼날을 세웠다.

마카오 코다이 건축물(사진=한국안전뉴스)


마카오 소방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홍콩의 비극을 보며 우리의 시스템이 옳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소방 시설은 건물의 장식품이 아니라 최후의 생명선입니다. 그 선을 끊는 자는 누구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홍콩 당국은 뒤늦게 마카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소방 자재에 대한 전수 조사와 관리 부실에 대한 형사 처벌 강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160여 명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왕폭코트의 잿더미는 이제 대한민국의 고층 도시들에 묻고 있다. 당신의 발밑에 흐르는 소방 용수는 지금 살아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