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심장부인 소호(Soho) 거리와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조던(Jordan) 지역. 이곳의 풍경은 수십 년째 '녹색 그물망'과 '대나무 막대기'에 포위되어 있다. 금융 허브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홍콩의 공사 현장은 19세기 수준의 안전 관행에 머물러 있다. 본지는 왕폭코트 참사 이후 실시된 긴급 실태 조사 결과와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 상황의 심각성을 짚어보았다.

홍콩 조던 지역의 한 노후 아파트 비계설치장면(한국안전뉴스)


통계로 본 위험천만한 홍콩, "불붙기 쉬운 도시"

최근 홍콩 소방처(FSD)와 시민단체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홍콩의 화재 취약성은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홍콩 내 준공 후 5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은 약 12,000개동에 달한다. 이 중 소방 시설 현대화 명령을 받았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못한 건물은 무려 60% 이상으로 노후 건물의 압도적 비율을 나타났다.

소호와 조던 지역 재건축·보수 현장의 95% 이상이 여전히 가격이 저렴한 대나무 비계와 일반 나일론 보호망을 사용하고 있다. 난연성 소재를 사용하는 곳은 대형 글로벌 건설사가 맡은 일부 현장에 불과하다.

올해 상반기 실시된 노후 아파트 소방 점검에서 4곳 중 1곳(약 25%)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주요 사유는 스프링클러 배관 노후화와 경보 시스템 단선이었다.

"우리는 닭장 속의 땔감인가"… 분노한 시민들

왕폭코트 참사 이후 조던 지역의 한 노후 아파트에 거주하는 찬(Chan, 62) 씨는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외벽 공사를 위해 설치된 대나무 비계가 창문 바로 앞까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탈출구가 없다" 찬 씨는 "비계가 창문을 가로막고 있고 그 위를 덮은 그물망은 라이터 불만 대도 순식간에 녹아내릴 것 같다"며, "홍콩이 국제도시라고 자랑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거대한 땔감 더미 속에 갇혀 사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홍콩 온라인 커뮤니티 'LIHKG'에는 "마카오는 벌써 난연성 그물망을 법으로 강제하는데, 홍콩 정부는 왜 건설사의 비용 절감만 봐주는가", "금융 허브라는 명성이 부끄럽다. 안전하지 않은 도시는 국제도시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게시글이 수천 건의 공감을 얻고 있다.

홍콩 조던 지역의 한 노후 아파트 비계설치장면(한국안전뉴스)


비용과 효율에 매몰된 안전 행정

국제도시 홍콩이 유독 안전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는 고착화된 건설 생태계에 있다.

대나무 비계의 경제성: 강철 비계 설치 비용의 약 30~40%에 불과한 대나무 비계는 홍콩 건설업계의 포기할 수 없는 '이권'이다. 하지만 건조한 기후에 취약한 대나무의 인화성에 대해 정부는 오랜 시간 눈을 감아왔다.

홍콩 법률상 공사 현장에는 임시 소방 시설을 갖춰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비계마다 소화기가 비치된 곳은 거의 없다. 단속 인력 부족을 핑계로 방치된 사이, 주민들의 생명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안전이 곧 국격이다"

홍콩화재를 토대로 한국이 진정한 안전한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안전 로드맵'을 제시한다.

정부는 즉각 모든 공사 현장에 대해 가연성 나일론망 사용을 금지하고, 마카오식 난연 표준을 도입해야 한다. 교체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더라도 화재 확산의 '고속도로'를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회 공청회를 서둘러 개최하여 '비계 인근 소화기 비치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소방 시설을 고의로 차단하는 행위에 대해 '징역형' 등 강력한 형사 처벌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

노후 건물이 밀집한 소호와 조던을 중심으로 스프링클러 수압과 밸브 상태를 실시간 감시하는 사물인터넷(IoT) 소방망을 구축하여, 관리인의 부주의가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는 스마트 소방 감시망을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시각 국제도시의 위상은 마천루의 높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시민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잠들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홍콩은 이제 대나무 비계와 나일론망이라는 구시대적 허울을 벗어던져야 한다. 안전에 무관심한 홍콩에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