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타이포의 고층 아파트 '왕폭코트(Wang Fuk Court)' 화재 참사는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15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의 핵심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설비의 부재와 안전의 방치가 만난 '예고된 인재'였다는 점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안전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시급히 도입해야 할 정책적 대안들을 짚어본다.

가연성 보호망을 '난연성'으로… "화마의 길을 끊어야"

홍콩 화재를 키운 일등 공신은 외벽을 뒤덮은 나일론 재질의 가연성 보호망이었다. 한국의 건설 현장 역시 비용 절감을 이유로 불에 취약한 저가형 그물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모든 건설 현장의 외벽 보호망을 '난연성 또는 불연성 소재'로 교체하도록 법적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인접 국가인 마카오가 화재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불꽃이 닿아도 4초 이내에 스스로 꺼지는 자재"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건축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 현장에서는 검증된 난연 자재 사용을 의무화하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홍콩 왕폭코트 아파트 화재현장(사진=한국안전뉴스)


비계 인근 소화기 비치 의무화… "초동 조치의 상시화"

왕폭코트 사례에서 보듯, 고층 건물의 외벽 비계(가설 구조물)에서 발생한 불은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으로 번진다. 이를 막기 위해선 비계의 각 층과 작업 지점마다 소화기 비치를 의무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작업자가 화재를 발견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행정이 아니라,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지점에 '최후의 보루'인 소방 장비를 상시 배치하는 꼼꼼한 안전 설계가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소방시설 무력화 방지… "스프링클러는 건물의 생명줄"

가장 시급한 대목은 소방 시설의 '상시 가동성' 확보다. 홍콩 참사 당시 스프링클러 밸브가 잠겨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국내에서도 공사 중 오작동이나 민원을 이유로 밸브를 잠그는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향후 국회와 당국은 소방 시설을 임의로 차단하는 행위에 대해 '중대 범죄'에 준하는 처벌 기준을 마련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밸브의 개폐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차단 시 소방당국에 자동 통보되는 시스템 구축을 장려하는 정책적 지원도 검토해 볼 만하다.

안전을 위한 사회적 투자와 법률 마련

이제는 '안전'을 비용이 아닌 '가치'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회는 조속히 홍콩 화재 사고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한 관련 법률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가연성 자재의 사용 금지부터 소방 관리 책임의 강화까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마카오의 정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홍콩의 비극 또한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왕폭코트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기본으로의 회귀'다. 타지 않는 보호망을 치고, 언제든 물이 뿜어져 나올 스프링클러를 유지하는 것. 이 당연한 상식이 법과 제도로 안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제2의 왕폭코트 참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