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마천루와 눈부신 야경 뒤에 가려진 홍콩의 민낯은 비좁고 위태로웠다. 지난 11월 26일, 홍콩 전역을 다시 한번 공포로 몰아넣은 왕폭코트아파트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홍콩이 지닌 구조적 모순과 안전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다. 본지는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김효범)과 함께 화마가 할퀴고 간 현장을 직접 찾아 그 실태를 추적했다.

최근 홍콩의 노후 아파트 단지와 ‘쪽방촌(Sub-divided flats)’에서의 화재 발생 빈도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대형 인명 피해를 동반한 화재가 전년 대비 약 15% 증가했다. 특히 5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 밀집한 구룡반도의 조던(Jordan)과 몽콕(Mong Kok) 지구의 상황은 심각하다. 한 가구를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눈 쪽방 형태의 주거지가 대부분인 이곳은 늘 화약고와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왕폭코트 현장에서 마주한 분위기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11월 26일 화재가 발생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건물 입구에는 여전히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검게 그을린 외벽은 마치 도시의 상처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고, 주민들이 다급히 대피하며 남긴 소지품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2025년 11월 26일 홍콩 타이포구에 위치한 왕푹코트 아파트 화재현장


현장에서 만난 주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소방차 사이렌가 크게 들렸으나 바깥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스티로폼으로가려서 바깥상황을 보이지 않았고 복도는 연기로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은 암흑같은 상황에 화염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라고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소방차가 지나갈 때마다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건물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2025년 11월 26일 홍콩 타이포구에 위치한 왕푹코트 아파트 화재현장(사진=한국안전뉴스)


본지 취재팀이 현장을 조사한 결과, 화재 피해를 키운 결정적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주민들과 홍콩 내 건축 전문가들, 그리고 관련 종사자들 대부분은 "대나무 비계가 주 원인일 가능성이 낮으며 공사 시공업체 측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사용한 후술할 가연성 소재의 그물이 문제라는 점을 덮기 위해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콩에서 사용하는 대나무 비계는 방염 처리를 충분히 하기 때문에 화재에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어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초기 화재에서 다른 곳으로 불을 퍼뜨리는 매개체가 될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예전에도 리모델링 중인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에서도 대나무 비계가 불을 더 키운 적은 크게 없었고, 이번 왕푹코트 화재에서도 대나무 비계들은 새까맣게 그을리긴 했지만 대나무 원형 형태를 유지한 채 버티고 있는 모습이 현장 취재 결과에서 관측된다.

왕푹코트 아파트 화재현장에 대나무 비계 연소사진(사진=한국안전뉴스)


둘째, 소방 시설을 고의적으로 꺼 놓았다는 것이다. 현장 취재 결과, D동 31층 거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나오자마자 화재경보기의 비상벨을 몇 번이나 눌렀으나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주민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층마다 문을 전부 두드려 이웃들을 불러냈으며, 보이는 화재경보기는 전부 눌러봤지만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임 경비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리모델링 공사 인부들이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을 드나들기 위해 일부러 관리 사무실의 경보 시스템을 꺼뒀다"고 한다.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이 직원은 시스템을 꺼서는 안 될 거 같다고 상관에게 여러 번 보고했지만 계속 문제가 반복되어 결국 퇴사했다고 밝혔다. 이후 조사 결과 이는 사실로 밝혀져 12월 3일 관계자 6명이 체포되었다.

셋째, 31층으로 지어진 고층건물임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저소득층에게 공급하기 위해 초기 진화에 필수적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도 화재가 속수무책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되었다. 내부로 불이 번진 고층 건물의 화재 진압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고, 실제로 홍콩 소방처는 화재 진압에 애를 먹었다. 2020년 울산 화재 사례처럼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건물 외부에서 외장재나 비계 등의 가연성 물질이 전부 전소해도 내부로의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어 큰 인명 피해를 막고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나 내부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을 것이며 홍콩 소방처의 소방과 구조 작업도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홍콩 정부는 화재 이후 노후 건물에 대한 일제 점검과 보조금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근본적인 주거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다시 위험한 쪽방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는 단순히 불이 난 사건이 아니라 홍콩의 주거 복지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마지막 경고'와 같다.

왕푹코트 인근 아파트의 복도모습(사진=한국안전뉴스)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아이의 신발 한 짝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 도시에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최근 한국에서도 스프링클러 미작동으로 인해 대형 화재로 확산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홍콩 아파트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그 화마가 태운 것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 역시 안고 있는 '안전 소외'라는 공통의 민낯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