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 참사 소식은 충격과 비통함을 넘어 깊은 의구심을 남긴다. 공식적으로 94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부상했다는 이번 참사는 1948년 창고 화재 이후 77년 만에 가장 큰 인명 피해를 기록하며 '안전 도시' 홍콩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지난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단지에서 불이 나 현장에 출동한 소방 대원들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필자는 수년 전 홍콩을 방문했을 때 도심을 가득 메운 고층 건물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竹棚, Bamboo Scaffolding)를 보고 잠시 멈춰 섰던 기억이 생생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최첨단 마천루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얇고 전통적인 대나무 구조물에 의지해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역설'이었다. 당시 저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는 이름값에 비해 너무나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광경을 보며, "홍콩은 대형 화재나 붕괴 사고를 겪은 적이 없나?" 하는 의문을 품었다. 첨단 공법 대신 대나무 비계를 고집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건축물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고 있을지, 그리고 고밀도 도시에서 화재 발생 시 대피와 진화에 취약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던 것이다.

이번 '웡 푹 코트(Wung Fuk Court)' 화재 참사는 안타깝게도 저의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난 비극이었다. 외벽 보수 공사 중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화재는 설치되어 있던 가연성 대나무 비계를 타고 순식간에 수직으로 확산되어 8개 동 중 7개 동에 불길이 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나무 비계는 가볍고 저렴하며, 숙련된 기술자가 빠르게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재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단지에서 불이 났다.


화재 초기 소방대원이 도착하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급격하게 번진 불길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 2천 가구, 약 4,800명의 주민들은 대피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피해 아파트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약 40%를 차지하는 노후 단지였다는 점에서 인명 피해를 키운 구조적 문제도 지적되다. 홍콩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불이 난 건물 외벽에는 유지보수 공사를 위한 대나무 비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는 화재의 수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참사는 단순히 불을 낸 '실수'를 넘어, 홍콩의 고밀도 도시 환경과 노후 주거 시설의 안전 문제를 정면으로 짚고 넘어갈 것을 요구한다. 홍콩은 세계적인 고층 건물 밀집 지역이며, 그만큼 건축 자재의 방화 성능과 엄격한 안전 기준이 필수적이다. 오랜 기간 관습적으로 사용되어 온 대나무 비계가 현대의 고층 건축 환경에서 발생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대나무 비계의 역설'은 이제 홍콩 정부와 건축 업계가 직면해야 할 가장 시급한 안전 문제로 떠올랐다. 과거의 관습과 효율성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이번 참사를 계기로 홍콩 전역의 보수 공사 중인 아파트 안전 상태를 전면 재점검하고, 고층 건물에 적합한 화재에 안전한 비계 및 건축 자재 사용 의무화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형 참사는 늘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희생된 94명의 넋을 기리고, 76명의 부상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 이상으로, 홍콩은 '최악의 참사'를 통해 도시 안전 시스템 전체를 재구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화재가 '77년 만의 교훈'으로 끝나지 않도록, 대나무 비계 아래 가려져 있던 홍콩의 안전 취약성이 완전히 해소되기를 바란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감식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