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 송창현 전 첨단차량플랫폼(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42dot) 대표의 사임,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 국내 도입 가시화, 그리고 중국의 공격적인 기술 발전과 대규모 상용화는 대한민국 자율주행 기술의 골든타임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현재 한국은 기술력 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제라도 기술 격차를 극복하고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학적 관점에서의 근본적인 준비가 시급하다.

자율 주행 자동차


1. 늦어지는 원인: 기술, 제도, 데이터 확보의 삼중고

대한민국 자율주행 기술이 선두 그룹에 비해 뒤처지는 핵심적인 공학적 및 제도적 원인은 규제 중심의 제도와 사고 책임 문제 (Law & Liability)를 지적할 수 있다.

자율주행 3단계(조건부 자율주행) 승용차 도입은 도로 제한 속도까지 규제가 완화되는 등 진전이 있었으나, 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게 우선 책임을 지도록 하는 현행법 때문에 제조사들이 상용화에 소극적이다.

통신 방식 결정 지연 등 부처 간 이견으로 신기술 도입 절차가 장기간 지연되어 인프라 구축의 발목을 잡고 있다.

테슬라 FSD의 핵심인 실시간 주행 데이터 수집 및 클라우드 학습 시스템이 국내 서버 구축 및 데이터 현지화 요구와 충돌하며, 대규모 주행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율주행 고도화의 핵심은 데이터에 기반한 AI 학습인데, 이 부분이 근본적으로 막혀있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수장이 사임하는 과정에서 기존 라이다(LiDAR) 방식에서 테슬라와 유사한 카메라 기반(비전) 방식으로 전환을 주도했던 것이 조직 내 불화 및 기술적 논쟁의 배경이 되었다. 멀티 센싱(라이다 + 카메라)이 최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급격한 전략 변경은 개발 효율성과 방향성에 혼란을 초래했다.

2. 선두 주자인 테슬라와 중국의 공학적 접근을 통한 주도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은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우회하거나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시장 주도권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테슬라 FSD(Supervised)는 8개의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360도로 시각화하고, 딥러닝 기반 AI가 매 밀리초마다 100만 개 이상의 영상 픽셀 데이터를 처리하여 실시간으로 복잡한 주행 환경에 대응한다.

이는 하드웨어 제약을 최소화하고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로 기술을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국내 기업들이 레벨 3에 머무르는 동안 소비자들에게 레벨 2+ 이상의 체감 성능을 제공하며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중국은 정부 정책과 전기차 보급, 물류비 절감 동력을 바탕으로 상업용 차량(항만, 광업, 물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세계 시장의 30%)을 보이며 상용화를 가속하고 있다.

베이징, 우한 등 주요 도시들은 L3급 이상 자율주행차의 조례를 잇달아 시행하며 대규모 도로 인프라 개방(예: 우한 3,380km)을 통해 실증 및 데이터 축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3. 대한민국 자율주행의 재도약을 위한 기술적-정책적 제언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핵심 분야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융합적 데이터 확보 및 AI 학습 생태계 구축(The Data-Centric Strategy)이 필요하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구글 지도 서비스가 제한되는 등 경직된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고, 자율주행용 대규모 주행 데이터의 수집, 저장, 활용을 촉진하는 새로운 데이터 주권 및 보안 프레임워크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국가 주도 '데이터 레이크' 조성하기 위해 기업들이 비용과 위험 부담 없이 협력하여 공동의 자율주행 학습 데이터 세트(Data Lake)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특유의 교통 환경(복잡성, 비정형성)에 최적화된 AI 알고리즘을 개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E2E(End-to-End) AI 개발 가속화하기 위해 카메라, 라이다 등 센서 데이터가 입력되면 자율주행 판단 및 제어까지 한번에 수행하는 E2E 딥러닝 기반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하여, 테슬라와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혁신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대한민국 자율주행 기술의 지연은 단순한 속도 문제가 아니라, 미래 산업 생태계 전반의 주도권을 잃을 수 있는 구조적인 위협입니다. 즉각적인 제도 개혁, 데이터 기반의 공학적 전략 전환, 그리고 인재 확보를 통해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할 것이다.

김효범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폭발조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