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질식 및 유해가스 흡입 사고는 단순한 '재수 없는 사건'을 넘어, 기업의 안전 관리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협력업체 직원들이 다수 희생되는 사례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고질적인 산업 안전 문제를 재확인시키며 국민적 공분과 함께 전문적인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1. 반복되는 포스코 질식사고의 개요와 심각성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과거에도 질소가스 질식사고 등 치명적인 중대재해가 발생했던 현장이다. 2018년 1월에는 냉각기 교체 작업 중이던 외주업체 근로자 4명이 누출된 질소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당시 조사 결과, 작업 전 밸브 작동 잠금장치(Lock-Out/Tag-Out, LOTO) 미실시와 호흡용 보호구 미비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 위반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최근에도 유사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2025년 11월 5일 유해 기체 흡입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한 데 이어, 보름 만인 11월 20일에는 청소 작업 중 가스 누출로 인해 작업자 6명(심정지 3명 포함)이 피해를 입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 당국은 이 사고의 원인을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들은 주로 정비, 보수, 청소와 같이 비정형적이고 위험한 작업에서 발생하며, 작업 전 유해가스 차단 및 밀폐 공간 작업 안전수칙(산소 농도 측정, 환기, 보호구 착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공통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안전불감증을 넘어 안전 시스템의 현장 작동력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2. 사고 반복의 구조적 문제점
포스코 그룹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관리체계 9요소를 정립하고 안전보건 최고 책임자(CSO) 선임, 안전보건 예산 확대 등 대대적인 안전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문제점들 때문이다.
포스코의 질식사고가 반복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고질적인 산업 구조에 있다. 위험성이 높은 정비, 보수, 청소 작업일수록 다단계 하도급을 거쳐 협력업체 직원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강하다. 원청인 포스코의 안전 관리 감독은 이러한 다단계 하청 구조의 말단까지 충분히 미치지 못한다. 협력업체들은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인해 충분한 안전 조치와 시설 투자를 이행하기 어렵다.
또한, 안전 인센티브 제도가 오히려 사고 발생 시 은폐 또는 축소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재해 달성 시 보상하는 시스템은 현장 작업자들이 위험 요인을 솔직하게 보고하기보다 숨기도록 유도하여, 결국 현장의 실질적인 위험 파악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포스코가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희생이 반복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경영진 차원의 안전 시스템 구축 노력이 현장 작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시스템-현장 간 괴리' 역시 심각한 문제다. 포스코가 수립한 안전 목표와 절차는 문서상으로 완벽해 보일 수 있으나, 이것이 현장 작업자의 실질적인 안전 행동과 위험 통제로 연결되지 못하고 '종이 안전(Paper Safety)'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여기에 더해, 포항제철소의 일부 시설은 장기간 운영되어 노후화가 진행된 상태다. 이에 대한 정기적인 정밀 안전 진단 및 설비 교체 주기가 현장의 위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노후 설비는 유지보수 시 예측하지 못한 위험 요소(예: 배관의 부식으로 인한 유해가스 누출)를 내포하기 쉽다. 시설 노후화에 대한 전향적인 투자와 관리 부재는 시스템적 안전 관리를 무력화시키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 수칙의 미준수가 반복된다는 점은 안전 문화 자체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질식사고의 주요 원인인 에너지 차단 및 격리 관련 안전 수칙, 즉 LOTO(Lock-Out/Tag-Out) 절차가 작업 현장에서 습관적으로 무시되거나 형식적으로 이행되는 경우가 반복된다.
궁극적으로는 단기 성과주의가 안전이라는 최우선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 생산성, 납기 등 단기적 경영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면서, 작업 현장의 안전 조치가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치부되는 안전 문화가 팽배하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위험 요소를 발견하면 즉시 작업을 중단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3. 근본적인 안전 확보를 위한 대책과 학계 등 전문가의 역할
반복되는 비극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기업의 전사적 결단과 함께 학계/전문가 그룹의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기업은 인명 존중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근본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다음과 같다.
위험의 외주화를 끝내기 위해서는 위험을 기업 내부로 내재화하고 하도급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특히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여 위험 작업에 대한 직접 관리 및 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다단계 하청 구조를 단순화하고 원청의 안전 관리 책임 범위를 현장 끝단까지 확대해야 한다. 또한, 협력업체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안전 예산과 적정 공사 기간 및 대가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비용 절감보다 인명 안전이 우선되는 경영 철학을 실현하는 필수적인 조치이다.
기술 기반의 위험 통제 시스템 구축 등 안전 관리에 첨단 기술을 의무적으로 적용하여 인적 오류를 최소화해야 한다. 유해가스 및 산소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밀폐 공간 진입 통제 시스템(출입 기록, 작업 허가 자동 승인)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AI 기반 위험 예측 시스템을 활용하여 사고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질식사고의 핵심인 LOTO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모든 에너지원 차단 밸브/스위치에 대한 물리적 잠금장치와 2인 이상 확인 절차를 시스템적으로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한 처벌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안전 문화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생산 목표보다 안전 조치가 우선되는 '안전 우선(Safety First)'을 넘어, 안전이 곧 생산의 전제 조건인 '안전 내재화(Safety Internalization)'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작업자들이 위험을 감지했을 때 즉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과 문화를 보장해야 하며,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당연한 직무로 인식하도록 끊임없이 교육하고 독려해야 한다.
특히 노후된 산업 시설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학회 및 전문기관은 객관성과 공신력을 바탕으로 노후 시설 및 안전 진단에 대한 학회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학계는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전문가 그룹(산업안전, 화학공학, 기계공학 등 학회 연합)이 정밀 안전 진단을 주도하도록 나서야 한다. 철강, 화학 등 장치 산업 시설의 특성을 반영한 노후 설비 위험도 평가 기준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진단을 수행해야 한다. 나아가 노후 시설의 재질 열화 및 잔여 수명(Remaining Life)을 공학적으로 평가하고, 잠재적인 사고 시나리오 및 위험도를 예측하는 전문적인 컨설팅을 제공해야 한다.
학계는 현장 적용이 가능한 최신 스마트 안전 기술(예: 드론을 활용한 시설 점검, IoT 기반 실시간 모니터링)을 검증하고, 산업계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산업 현장의 안전 관리자 및 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고위험 작업 특화 교육(밀폐 공간, LOTO 등)을 강화하고, 학회 차원의 인증 제도를 도입하여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폭발조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