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방의 역사는 '승격'의 환희보다 '낙마'의 불명예로 점철되어 왔다. 2017년 소방청 독립 이후, 소방 조직의 수장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며 구속되거나 직위 해제되는 모습은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특히 지난 20년간 수많은 청장이 거쳐 갔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임기 2년을 온전히 채운 청장은 참여정부 시절의 문원경 전 소방방재청장이 유일하다. 이 뼈아픈 현실은 소방청장의 '2년 임기 법제화'와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방증한다.
끊이지 않는 비리 잔혹사, 인사 청탁부터 입찰 비리까지
소방청 지휘부가 흔들린 결정적 계기는 내부의 고질적인 인사 및 납품 비리였다.
신열우 전 소방청장은 재직 시절 차기 청장 자리를 노리던 하급자로부터 승진 대가로 현금과 명품 지갑 등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청와대 행정관에게 인사 청탁을 시도하고, 퇴임 후에는 업체로부터 차량 렌트비를 지원받는 등 고위 공직자로서는 차마 믿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이흥교 전 소방청장은 국립소방병원(소방복합치유센터) 건립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입찰 비리 의혹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직위 해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처럼 지휘부가 비리에 연루되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임기 보장의 부재'다. 임기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장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조직 내부에서는 줄 대기와 청탁이 판을 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20년 동안 단 1명, '문원경 청장'만이 완주한 임기
소방 조직의 근간이 만들어진 2004년 이후, 2년의 임기를 채운 수장은 제2대 소방방재청장을 지낸 문원경 청장(2006.02~2008.03) 뿐이다. 이후 소방청으로 독립한 뒤에도 초대 조종묵 청장부터 최근의 남화영 청장에 이르기까지 2년을 버틴 인물은 전무하다.
평균 1년 남짓한 짧은 임기는 소방 행정의 '전문성'과 '공정력'을 갉아먹는다. 대형 재난에 대응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려 해도 수장이 바뀌면 동력을 잃기 일쑤다. 만약 2년 임기제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면, 청장이 단기적인 성과나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조직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사청문회, '공정력' 확보를 위한 최후의 보루
임기 보장과 함께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장치가 바로 국회 인사청문회다. 현재 소방청장은 별도의 청문회 없이 임명된다. 이는 경찰청장이나 해경청장이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청문회는 후보자가 지휘부 비리의 사슬에서 자유로운 인물인지, 재난 대응의 전문성을 갖췄는지 국민 앞에서 검증하는 마당이다. 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청장은 그 자체로 강력한 '공정력'을 얻는다. 조직 내부에서도 "실력과 청렴함을 인정받은 수장"이라는 신뢰가 생기며, 이는 곧 일선 소방관들의 사기 진작과 직결된다.
흔들리지 않는 '안전 컨트롤타워'를 위하여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7만 소방 공무원들의 명예는 지휘부의 깨끗한 손에서 시작된다. 소방청장의 임기를 2년으로 명문화하고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것은 단순히 지위를 보장해 주는 차원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풍파와 부패의 유혹으로부터 대한민국 소방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다.
더 이상 비리 뉴스에 소방청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제2, 제3의 문원경 청장이 탄생하여 임기를 당당히 마치고 정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정치권은 소방청 임기 보장법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