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7일 새벽 4시경, 대한민국 물류의 핵심 거점 중 하나인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A 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밤의 정적을 깨고 치솟은 검은 연기는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도 관측될 정도로 거대했으며, 불길은 삽시간에 축구장 4개를 합친 규모에 달하는 대형 창고 건물을 집어삼켰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 이랜드패션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수백 명의 소방대원과 첨단 장비가 투입된 진화 작업은 36시간 만에야 주불을 잡을 수 있었다. 인명피해는 다행히 경상자 2명에 그쳤으나, 창고에 보관 중이던 수천억 원 규모의 상품과 핵심 물류 시설이 전소되면서 국내 물류 시스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번 화재는 단순한 재산 피해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 안전 시스템의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낸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화재 발생 직후부터 원인 규명에 총력을 기울인 소방 당국과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합동 조사팀은 며칠간의 정밀 감식 끝에 결정적인 화재 발화 지점을 특정했다. 그 원인은 놀랍게도 물류센터의 일상적인 운영에 필수적인 장비, 바로 전동지게차였다.
전동지게차 충전 중 화재발생 가능성
합동 감식팀이 발표한 중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천안 물류센터 화재의 발화 지점은 창고 3층 구역에 위치한 전동지게차 충전소 인근으로 확인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지게차 충전 과정 혹은 장비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화재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1. 충전 중 과열 또는 합선: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물류센터에 사용되는 대형 전동지게차는 주로 납축전지(Lead-Acid Battery)나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특히 물류센터가 24시간 가동되는 경우,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고속 충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납축전지의 경우 충전 시 발생하는 수소가스가 밀폐된 공간에 축적되거나, 충전기에 연결된 케이블의 절연이 파괴되면서 합선(Short Circuit)이 발생할 경우 스파크가 튀면서 주변 가연물에 불이 붙을 수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경우 배터리 셀 자체의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가장 위험하다. 충전 회로에 문제가 생기거나 외부 충격으로 셀이 손상될 경우, 통제 불가능한 고열이 발생하며 폭발적으로 불길을 일으킨다.
화재 당시 CCTV 영상에는 새벽 시간대, 충전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지게차 한 대에서 미세한 연기와 함께 불꽃이 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는 충전 케이블을 분리하는 순간 스파크가 발생했거나, 이미 충전이 완료된 배터리 팩 내부에서 과열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2. 열악한 안전 관리 시스템: 안전 수칙은 무용지물이었나
물류센터 특성상 화물 적재 공간과 지게차 충전소 간의 이격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지적된다. 대규모 물류센터는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물품을 적재하기 위해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지게차 충전소 주변에 종이 박스, 비닐 랩, 플라스틱 팔레트 등 인화성이 매우 높은 가연물이 근접하게 쌓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게차 배터리에서 발생한 작은 불꽃이라도 주변 가연물에 옮겨 붙는 순간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특히 물류센터는 화재 초기 진압이 늦어지면 엄청난 속도로 연소하는 수직·수평 확산의 최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동화 시대의 역설 – 산업 현장의 숨겨진 위험
최근 몇 년간 산업 현장에서 디젤 및 LPG 지게차 대신 전동지게차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친환경 기조에 따른 시대적 흐름이자, 실내 작업 환경 개선 및 소음 저감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이 '친환경'의 이면에는 관리 부주의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배터리 화재'라는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 노후 장비 관리의 사각지대
화재가 발생한 물류센터는 비교적 연식이 오래된 지게차 여러 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노후 지게차의 배터리 및 충전 시스템 관리이다.
수년 이상 사용된 배터리는 성능이 저하되며 내부 단락이나 발열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물류센터처럼 가혹한 환경(잦은 충전-방전, 충격 노출)에서 사용될 경우 열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그리고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품 충전기나 케이블을 사용하거나, 배터리 정비가 불충분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품이 아닌 부품은 안정성 테스트를 거치지 않아 과전압이나 누전을 유발할 위험이 매우 높다.
천안 물류센터의 관리 담당자는 "정기적인 지게차 점검을 시행해 왔으나, 배터리 팩 내부의 미세한 결함까지 사전에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산업 현장의 예방 중심 안전 관리가 아닌, 사후 처리 중심의 관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 화재 진압의 어려움과 대형 피해
전동지게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는 일반 화재와는 진압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리튬 이온 배터리 화재의 특성으로 일반 소화기로는 진압이 불가능하며, 다량의 물을 사용하더라도 배터리 셀 내부의 산화 반응을 막기 어렵다. 오히려 화재가 재발(Re-ignition)할 위험이 크다. 전문적인 D급(금속 화재) 소화약제 또는 특수 방화덮개 등의 장비가 필수적이지만, 대규모 물류센터에 이러한 전문 장비가 충분히 비치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화재 초기, 지게차에서 발생한 불길은 신속하게 진화되지 못하고 주변의 포장재와 상품으로 옮겨 붙었다. 창고 내부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이미 불길이 천장까지 닿아 열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초기 진화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쳤다. 건물 전체로 확산된 화염은 결국 엄청난 규모의 재난을 초래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물류센터 시스템 혁신을 촉구하며
천안 물류센터 화재 참사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숙제를 남겼다. 대형 물류센터의 안전 관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특히 전동화 장비로 인한 새로운 위험 요소에 대비하는 혁신적인 안전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1. 충전소의 표준화된 안전 구역 지정
모든 물류센터는 전동지게차 전기충전소를 방화 구획 내부에 설치하고, 주변에 인화성 물질을 10미터 이상 이격시키는 표준화된 안전 가이드라인을 의무화해야 한다.
내화 구조 충전실: 충전소 자체를 다른 구역과 완전히 분리된 내화 구조로 만들고, 옥외 또는 별도의 건물에 설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24시간 감시 체계: 충전소에 고성능 열화상 카메라(Thermal Camera)를 설치하여 충전 중인 배터리의 이상 발열을 24시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경보가 울리면 즉시 전원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2. 의무적인 정밀 진단 및 검사 주기 단축
전동지게차 배터리 및 충전 시스템에 대한 의무적인 정밀 진단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 자동차처럼 주기적인 안전 검사 제도를 도입하여, 일정 사용 기간이 지난 노후 배터리 팩은 사용을 제한하거나 교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물류센터 운영 업체는 비용 절감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정품 부품 사용과 전문 업체에 의한 정기적인 정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
천안 물류센터 화재는 '작은 불씨' 하나가 얼마나 거대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었다. 전동지게차라는 일상적인 산업 장비가 불러온 이번 참사는, 경제 성장과 효율성만을 쫓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안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부주의'나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동화 시대를 맞아 새롭게 등장한 산업 안전 위험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혁신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국민 경제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전소된 창고 잔해 속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는, 우리 모두에게 안전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묻고 있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폭발조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