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새벽,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에 위치한 이랜드패션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수많은 의류와 잡화를 태우며 건물 내부를 전소시키는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 관계 당국의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화재는 60시간 만에야 완진될 정도로 격렬했는데, 특히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다는 이랜드 측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건물이 전소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스프링클러 작동 진위여부에 해서는 향후 소방기관의 소방시설 조사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천안 이랜드패션 물류센터 붕괴된 장면(사진=한국안전뉴스)
화재는 11월 15일 오전 6시 8분경, 물류센터 4층 쪽에서 연기가 났다는 신고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며, 경찰과 소방당국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전기 배선 결함이나 지게차 로봇 관련 전기적 요인을 유력한 발화 원인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직후 대응 단계를 격상하며 총력을 다했으나, 진화에는 9시간 30여 분 만에 큰 불길을 잡고도, 최종 완진까지는 60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진압이 장기화되고 결국 전소에 가까운 피해가 발생한 핵심적인 이유는 물류센터라는 건물의 특성과 내부 적재물의 가연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dl다.
천안 이랜드패션 물류센터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연면적 19만 제곱미터가 넘는 대규모 시설로, 의류, 신발, 잡화 등 총 1,100만 개 이상의 물품이 보관돼 있었다. 이 물품들은 대개 섬유, 종이 포장재, 플라스틱 등 고발열(High Heat Release Rate) 및 고연소 속도(High Combustion Rate)의 특성을 가진 가연성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류센터의 특성상 이 물품들은 수 미터 높이의 랙(Rack)에 층층이 촘촘하게 적층되어 있어, 한번 불이 붙으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불꽃과 열을 가속적으로 키우는 환경이 된다. 좁은 통로와 높은 층고는 열과 연기를 빠르게 집중시켜 화재 성장 속도를 스프링클러의 초기 방수 능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숨에 압도하게 된다.
이랜드 측은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밝혔지만, 초기 진화를 막지 못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물류창고에 적용된 스프링클러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기술적 한계를 지적한다.
긴 수격 도달시간 (Water Delivery Time): 국내 대형 창고에서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은 건식(Dry) 또는 준비작동식(Pre-action) 스프링클러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은 화재 감지 후 밸브 작동, 배관 충수, 그리고 헤드 방수까지 수십 초가 걸리는 지연 시간이 발생한다. 화재 성장 속도가 빠른 물류창고에서는 이 수십 초의 지연이 초기 진화의 결정적인 실패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건이 층층이 쌓여 있는 물류센터에서는 위에서 물을 뿌리는 천장형 스프링클러만으로는 불길을 잡기 역부족일 수 있다. 화재는 랙 내부와 쌓인 물품 사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물이 불이 난 지점까지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측벽형 스프링클러나 랙 내부 스프링클러 등의 추가적인 보완 설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설계 및 시공 기준이 화재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배관 내부에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고 고이면서 부식을 유발해 핀홀 누수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화재 안전 기준(NFPC)이 해외(NFPA) 규정에 비해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기울기나 배수 규정을 명시하지 못하는 구조적 취약점이 물류센터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화재 성장 속도, 고가연성 적재물, 그리고 건식 시스템의 초기 작동 지연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초기 진화에 실패했고, 화재는 단시간 내에 전 층으로 확산되어 건물을 전소시켰다.
현재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합동 감식을 진행 중이며, 정확한 피해 규모는 산정 중이나 수백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천안 이랜드 물류센터 화재는 물류 산업의 성장에 발맞춰 대형 물류창고의 화재 안전 기준과 소방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인 재검토와 강화가 시급하다는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