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활주로 이탈 사고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숙제를 남겼다. 기상 악화 속에서 강행된 착륙 시도도 문제였지만, 사고 조사 결과가 발표될수록 대중의 분노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바로 활주로 끝에 방치되었던 ‘콘크리트 둔덕’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 둔덕만 없었어도 승객 전원이 무사히 걸어 나올 수 있었다"라고....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기적 같은 생존 뒤에 가려진 '인재(人災)'

사고 당시 여객기는 폭우로 미끄러운 활주로를 제어하지 못한 채 종단을 넘어섰다. 통상적인 공항이라면 활주로 끝에는 기체의 속도를 줄여주는 완충용 흙밭이나 모래 구역(RESA)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안공항 활주로 끝단 너머에는 공사 과정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견고한 콘크리트 옹벽과 배수로 둔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미끄러지던 기체는 이 단단한 구조물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만약 평탄한 잔디밭이나 연성 소재의 완충 지대였다면 기체는 서서히 멈춰 섰을 것이다. 그러나 콘크리트 둔덕은 기체의 하부를 처참하게 찢어 놓았고, 이 충격으로 날개 내부에 있던 연료탱크가 파열되며 순식간에 화마가 기체를 집어삼켰다.

"살 수 있었던 목숨, 장애물에 막혔다"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원과 항공 전문가들의 증언은 더욱 뼈아프다. 사고 직후 기체 구조를 분석한 한 전문가는 "동체가 지면과 수평으로 미끄러질 때는 충격이 분산되지만, 둔덕과 충돌하는 순간 모든 에너지가 기체 핵심부로 집중된다"며, "화재의 결정적 원인은 엔진 마찰이 아니라 둔덕 충돌로 인한 연료 계통의 파괴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해외의 유사 사고 사례와 비교했을 때, 활주로 끝에 항공기 결박 시스템(EMAS)이나 충분한 평지가 확보된 공항에서는 이 정도 속도의 오버런 사고가 인명 피해 없는 '단순 사고'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무안공항의 경우, 안전을 위해 존재해야 할 공간이 오히려 기체를 파괴하는 '흉기'가 된 셈이다.

예산 논리에 밀려난 안전, 누가 책임지나

이번 사고를 통해 국내 지역 공항들의 부실한 안전 시설물 관리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제기준(ICAO)은 활주로 종단 안전구역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나, 많은 공항이 지형적 한계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콘크리트 옹벽이나 급격한 경사면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무안공항 역시 사고 이전부터 활주로 인근 장애물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나, 실제 보수 작업은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결국 '설마 사고가 나겠느냐'는 안일한 행정이 콘크리트 둔덕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제2의 무안공항 참사를 막으려면

이제라도 전국 공항의 활주로 종단 구역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거리만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기체가 부딪혔을 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즉각 제거하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특수 소재 블록(EMAS)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안전은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작은 장애물 하나를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말이다. 다시는 활주로 끝자락에서 예고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공항 설계의 패러다임을 '사고 방지'에서 '피해 최소화'로 완전히 전환해야 할 때다.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감식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