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 이랜드패션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막대한 물적 피해를 넘어,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시설이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이 빠르게 확산하고 진압에 난항을 겪으면서, 대형 물류센터 화재 안전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천안 물류센터 화재 현장을 직접 방문해 붕괴된 잔해를 마주했을 때, 최첨단 소방시설을 갖춘 건물이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는 개별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현행 소방 안전 시스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결함을 심각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 이랜드물류센터 붕괴장면(사진=한국안전뉴스)


스프링클러, 왜 힘을 쓰지 못했나?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대형 화재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는 물류센터의 특수한 환경과 가연물량이 기존 소방시설의 설계 기준을 압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랜드 물류센터에는 의류 등 약 1,100만 개 이상의 상품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고밀도 수직 적재는 불이 붙을 수 있는 물질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화재 발생 시 엄청난 열과 연기를 발생시킨다. 스프링클러가 감당할 수 있는 소화 능력을 초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물류 창고는 층고가 높게 설계되는데,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나 화재감지기는 초기 발화 시 발생하는 열이나 연기가 충분히 상승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작동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불이 이미 거세게 번진 후에야 작동하게 되어 진압에 한계가 있다.

물류센터 건축에 흔히 사용되는 샌드위치 패널은 시공 편의성과 단열 효과는 좋지만, 내부의 가연성 단열재(우레탄폼 등)가 불에 매우 취약하여 한번 발화하면 벽과 천장을 따라 불길이 빠르게 확산하는 통로 역할을 하여 진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랙 구조물의 '도미노 붕괴'와 재난 증폭

천안 이랜드 물류센터 화재와 과거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는 대형 물류 시설의 안전 설계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단순한 가연물량이나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를 넘어, 초고층 다층 랙 구조물 자체가 화재 시 재난을 증폭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음이 명백해졌다. 화재 발생 시 랙 구조물이 철재의 연화점을 넘어 변형되고,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불길을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확산시키는 현상은 기존 소방 설계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형 물류센터에 적용되는 초고층, 다층 랙(Rack) 시스템은 단순히 물건을 보관하는 선반이 아니라, 건물 전체의 구조적 안정성 및 화재 확산 속도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철재의 연화와 급격한 붕괴: 화재 발생 시, 수백 도의 고열은 랙을 구성하는 철재 구조물의 강도를 급격히 약화(연화)시킨다. 철의 항복강도가 저하되면, 적재된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변형되거나 휘어지기 시작합니다. 단 하나의 랙이 무너지면, 이는 곧바로 옆의 랙을 가격하여 도미노 붕괴 현상을 유발한다.

랙이 무너지면서 수직으로 쌓여있던 물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파괴된 구조물 사이로 강력한 수직 대류가 발생해 화염과 연기가 수십 미터의 층고를 순식간에 뚫고 올라간다. 이는 일반적인 화재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게 된다.

그리고 랙 붕괴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양의 잔해와 연기는 소방관들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스프링클러나 다른 소방 장비가 화재의 중심부에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더라도, 붕괴된 랙 잔해물이 방수 효과를 막거나 물이 화염에 닿기 전에 증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존 방화 구획 설계의 한계 노출

현행 건축법상 방화 구획은 주로 바닥, 벽, 천장 등 건물의 건축적 요소에 의해 구획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물류센터의 화재는 '랙'이라는 가변적이며 고도로 가연성을 내포한 내부 구조물에서 시작되어 확산된다.

랙 구조물 자체는 방화 구획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아, 수천 개의 랙이 밀집된 공간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화재 구획처럼 기능합니다. 랙 붕괴가 시작되면 수백 미터에 달하는 공간 전체가 몇 초 만에 연소 범위에 놓이게 된다.

붕괴 현상이 화재 발생 직후 몇 분 내에 시작된다면,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화재를 제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확보되지 않습니다. 랙 내부의 수평적, 수직적 방화 구획 없이는 초기 진압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랙의 방화 구획화로 근본적인 재설계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물류센터의 설계 기준을 랙 구조물의 화재 안전성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랙을 구성하는 철재 구조물에 내화 성능을 가진 도료나 코팅을 적용하여, 고열 속에서도 구조적 강도를 일정 시간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000도 이상의 고열에 견디는 소재 적용을 고려하는 등 내화 도료 및 코팅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랙의 구획화 (Fire Compartmentalization of Racks)를 위해 수평 및 수직 방향으로 불연재 또는 난연재 격벽을 랙 구조 내부에 주기적으로 삽입하여, 랙 붕괴 및 화재 확산의 연쇄 효과를 차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정 구역(예:10m*10m)마다 랙과 랙 사이에 방화 셔터 혹은 방화 칸막이를 설치하여 화재를 격리하는 방안을 의무화해야 한다.

초기 진압 시스템의 다각화

현재 권고 수준인 랙 내부 스프링클러 설치를 모든 고층 물류센터에 의무화하고, 랙 구획별로 개별적인 소화 설비(가스계 소화 설비 등)를 추가 설치하여 입체적인 초기 대응이 가능하도록 랙 내부 소화 시스템 (In-Rack Sprinklers)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리고 랙 중간 층이나 발화 위험이 높은 구역(예: 충전소, 컨베이어 인접 구역)에 열 감지기를 추가 배치하여 화재를 초기 단계에 감지하고 즉각적인 소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안전 관리 시스템을 재편

건물 안전 등급제 도입하여 랙 높이, 적재 가연물량, 건축 자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화재 위험 등급을 부여하고, 등급에 따라 요구되는 소방 시설 및 내화 성능 기준을 차등 적용하는 안전 관리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

랙의 붕괴는 단순한 구조물 손실을 넘어,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피해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확산 메커니즘임이 증명되었다. 이제 물류센터 안전 설계는 건축물의 방화를 넘어 내부 설비인 랙 구조물 자체의 방화 설계를 필수적으로 포함하도록 대대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반복되는 물류센터 화재는 더 이상 '단순 사고'가 아닌 구조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시설 기준과 안전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감식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