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소방 전산망을 마비시키고 화재조사 보고서 등 민감한 공공 데이터를 외부로 흘려보낸 초유의 보안 사고가 발생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정작 핵심 책임자인 소방청 내부 인사들에 대한 처벌은 '주의·경고' 수준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화재조사법’ 비웃는 정보 유출, 민간 보험사 손에 들어갔나
지난해 10월, 특정 개인의 무차별적인 정보공개 청구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소방행정정보시스템의 과부하와 전산 장애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조사법 제24조(비밀유지)**에 따라 엄격히 보호되어야 할 화재조사 보고서와 피해자 개인정보가 비식별 조치 없이 대량 유출되었다.
특히 유출된 정보 중 상당수가 민간 보험사 및 손해사정법인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화재 피해자들이 보험금 지급 거절 등 2차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이는 공공기관의 보안 관리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파면·구속 없는 ‘그들만의 징계’… 실무자에게만 책임 전가
사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소방청이 실시한 내부 감찰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정보통신 보안과 행정망 관리를 총괄하는 소방청 고위 관계자 및 실무 사무관들 중 파면, 해임은커녕 구직 구속이나 직위해제 등의 고강도 처벌을 받은 인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대부분 '견책'이나 '훈계' 등 행정적인 경징계에 그쳤으며, 소방청은 사고의 원인을 "예상을 벗어난 대량 접속으로 인한 기술적 한계"와 "외부 위탁 업체의 관리 부실"로 돌리고 있다. 사실상 내부 지휘부의 정책적 판단 착오와 보안 불감증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 셈이다.
소방 노조 "꼬리 자르기 중단하라" 강력 반발
이에 대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이하 소방 노조)는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현장의 화재조사관들은 마비된 시스템 붙잡고 밤새 보안 작업을 수행하며 고통받고 있는데, 정작 시스템을 망가뜨린 지휘부는 무사안일하게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화재조사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범죄 행위"라며, "소방청 내부 인사에 대한 고강도 인적 쇄신과 구속 수사를 포함한 사법적 처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소방 행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기도 등 지자체 피해 확산, 대책 마련 시급
화재 발생 건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도의 경우, 유출된 보고서가 향후 수년간 보험 분쟁의 불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무원이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행위는 형법 제127조에 의거해 형사 처벌 대상"이라며 "내부 징계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소방청은 뒤늦게 보안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너진 공직 기강과 보안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지금이라도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