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 화력발전소에서 철거 중이던 보일러 타워가 붕괴하여 다수의 작업자가 매몰되거나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석 달 전에도 이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있었고,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이 '후진적 산업 재해를 영구 추방해야 한다'고 직접 지적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이 사고는 단순한 개별 사건을 넘어 한국 산업 안전의 구조적인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사고는 전형적인 산재이며, 예측할 수 있었던 사고라고 생각한다. 건설 재해 중에서도 해체 작업은 가장 위험하며 붕괴 사고가 예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리는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끊이지 않는 ‘위험의 외주화’와 영세 사업장의 비극
사고의 배경에는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이 위험한 작업을 하청으로 떠넘기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결국 영세 소규모 하도급업체 직원들만 피해를 당하는 현실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하도급업체는 철골 및 콘크리트 해체 분야에서 국내 상위에 해당하는 전문 업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전문적인 해체 작업조차 시공/건축 분야에 비해 영세화되는 추세이다. 해체 작업은 '작업 당시에만 사고가 안 나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 속에 기술력이나 안전 관리 역량 강화가 소홀히 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전체 산재 사망 사고의 80%가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의 산재 사망은 2010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으나, 영세 소규모 사업장은 정책적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거의 포기한 듯"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적 망신, 비정상적인 대한민국의 산재 사망률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비정상적인 수준이다.
OECD 평균(10만 명당 1.7명) 대비 약 2배 이상.
유럽 평균 대비 약 2배 높음.
싱가포르(1.1명) 대비 4배 높음.
일본 대비 3배 높음.
대만 대비 2배 높음.
이처럼 월등히 높은 산재 사고율은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정책과 전략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안전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
필자가 생각하는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정책의 초점을 '영세 소규모 사업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대기업은 처벌, 영세 기업은 지원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첫째, 대상의 무차별화. 음주운전을 대형차든 소형차든 똑같이 금지하듯이, 안전 관리 소홀에 대한 처벌과 지원은 대기업이든 영세 사업장이든 동일한 선상에서 정교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 해체 및 유지보수의 중요성 인식.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는 건설 시공뿐만 아니라 '해체와 유지보수'가 더욱 중요해다. 이 분야가 영세화되지 않고 건실한 기술력과 안전 역량을 갖추도록 국가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안전관리자 기득권' 해소. 현재 산업안전 관리가 '안전관리자, 건설관계자' 위주로 전문화되면서, 오히려 현장 작업반장 등 실제 책임지는 라인 조직의 안전 역량 확보는 소홀해지고 기득권만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현장 작업자들의 안전 역량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난사고의 경험이 많은 재난전문가 체제로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이제는 성과를 낼 때
"후진적 산업 재해 영구 추방"이라는 대통령의 엄중한 지적이 무색하게 또다시 발생한 울산 화력발전소 사고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안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이다. 지금은 이념적, 관념적 접근이 아닌,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 역량 강화라는 근본적 해법을 마련하고, 대통령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학회 이사, 컴퓨터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