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인재(人災)'의 심각한 경고음을 울렸다. 스프링클러라는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소방 설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자의 임의 조작으로 작동이 멈추면서 화마는 8시간이 넘게 지속되었고, 차량 880여 대가 피해를 입는 등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겼다. 이 사건은 소방시설의 설치만큼이나 유지 및 관리가 얼마나 중요하며, 그 최전선에 있는 안전관리자의 전문성 확보가 왜 시급한 국가적 과제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1. 스프링클러 미작동이 드러낸 안전관리 부실의 민낯
소방시설은 단 한 번의 오작동이나 관리 소홀로도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수원과 아산의 유사한 전기차 화재 사례에서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여 피해가 2시간 내로 최소화된 것과 대비할 때, 청라 화재의 8시간 넘는 진화 시간은 곧 '관리'의 실패를 의미한다.
스프링클러, 소화전, 경보 시스템 등 모든 소방 시설은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나, 이를 다루는 인간의 행위가 시스템의 신뢰성을 무너뜨렸다. 야간 근무자가 경보를 '사소한 오류'로 판단하고 밸브를 정지시킨 행위는 화재 현장의 위험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 비상 상황 대응 매뉴얼의 부재가 낳은 참극이다. 이는 현재 소방안전관리자 자격 체계가 '실제 화재 대응 경험'이 결여된 채 이론과 교육 이수에만 치중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불을 본 적 없는 관리자가 화재의 속성과 파괴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진압 및 예방을 책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에 가깝다.
2. 안전관리자 자격 및 책임 강화: '경험'이 곧 안전이다
소방시설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청라와 같은 인재를 막기 위한 핵심적인 대책은 소방 안전관리자의 전문성과 책임 강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격 제도는 '이론 이수' 중심에서 '실전 경험' 중심으로 대폭 개편되어야 한다.
첫째, 화재 현장 경험의 의무화가 필요하다. 특급 및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 취득 시, 소방 관련 직종(소방공무원, 의무소방원, 화재폭발조사관, 화재조사관, 화재감식평가기사 등)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여 실제 화재나 비상 상황을 경험한 경력을 필수 요건으로 지정해야 한다. 현장에서 체득한 위기 관리 능력과 재난에 대한 경각심은 관리자가 임의 조작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것이다.
둘째, 실무 중심의 교육 및 훈련을 혁신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현재 소방안전원 등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사이버 교육과 집합교육이 대부분으로, 화재 현장의 극심한 열기나 폭발 위험을 전혀 경험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소방안전관리자가 화재를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 위험으로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화재 및 폭발 상황에 대한 실무적인 훈련을 통해 열 폭주, 연기 확산 속도 등 실질적인 위험 요소를 체득해야 한다. 단순한 법규 강의가 아니라, 전기차 화재 시나리오 대응, 밸브 잠금 방지 시뮬레이션 등 관리자가 실수하기 쉬운 치명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반복적인 실전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법적 책임의 강화를 통해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해야 한다. 관리 소홀이나 임의 조작으로 인한 피해 발생 시 관리 주체 및 관리자의 민·형사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3. 소방시설 정밀 점검 및 시스템적 통제 강화
관리자의 전문성 강화와 더불어, 설비 자체의 시스템적 통제를 통해 인위적인 실수를 방지해야 한다.
첫째, 핵심 제어 장치에 대한 이중 잠금 및 봉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스프링클러 밸브실처럼 소방 설비의 작동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장치에는 관리자 2인 입회하의 열쇠 관리를 의무화하거나, 밸브의 위치가 변경되면 즉시 알람이 울리는 전자 봉인(Seal) 시스템을 적용하여 임의 조작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둘째, 전기차 화재 특화 설비 보강이다. 일반 화재와 달리 열 폭주 현상을 보이는 전기차 화재에 대비하여 지하 주차장 내 충전 구역에는 배터리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 또는 가스 감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물 분무/포 소화 설비 또는 질식소화포 비치를 의무화하여 초기 진압 능력을 높여야 한다.
인천 청라의 참사는 단지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과 관리 인력의 총체적인 부실이 초래한 결과이며, 우리는 '화재 현장 경험'을 갖춘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시스템적 안전장치를 확립함으로써 다시는 인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방 안전관리자 자격 기준을 '경험' 중심으로 혁신하고, 시스템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대책이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감식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