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는 터질 때까지 잠잠하다." 이 섬뜩한 명제가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관통하는 현실이 되었다. 사고를 겪을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한 참사가 되풀이된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운이 나쁘거나 몇몇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안전 위협은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하는 구조적 모순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을 포함한 산업 현장과 노후 시설물 관리는 이러한 구조적 위험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건설산업은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위험도가 높으며, 국내 건설업 종사 근로자의 사고사망률(사고 사망 만인율)은 OECD 경제 10대국 중 가장 높은 1위를 기록했다.(2023년)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수많은 중대재해는 바로 이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결과이다. 예를 들어, 건설 현장에서 반복되는 추락사고와 끼임 사고는 단순한 작업자의 안전 수칙 미준수가 아닌, 공기(工期) 압박과 비용 절감 때문에 필수적인 안전 설비 설치나 충분한 안전 교육이 생략되거나 부실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대규모 시설 붕괴 사고나 다중밀집 인파 사고 역시 표면적으로는 시설 관리 주체의 과실이나 현장 대응 미흡으로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시설 노후화에 대한 적절한 투자 부족, 안전 규제 이행 여부를 형식적으로만 확인하는 부실한 감독 시스템, 그리고 안전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하는 구조적 압력이 자리하고 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불감증'을 탓하지만, 이는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손쉬운 변명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인재(人災)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안전의 가격표'가 너무 낮게 책정되는 데 있다.
공공 및 민간 사업에서 최저가 입찰 계약은 안전을 희생시키는 주범이다. 사업 수주를 위해 최저가를 제시하면, 결국 현장에서는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 관련 비용과 인력부터 줄이기 시작한다. 안전 예산이 최소화되면서 작업 환경은 악화되고 위험도는 높아진다.
다단계 하청 구조는 안전 관리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원청은 안전 관리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영세한 하청업체는 비용 부담으로 인해 제대로 된 안전 관리를 수행할 여력이 없다. 최종적으로 사고 발생 시에는 말단 작업자나 하청업체만 처벌받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한 원청과 발주처는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미 많은 기간 시설과 건축물이 내구연한을 넘기거나 노후화되고 있지만, 예방적 유지 보수보다는 사후 약방문식의 대응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안전 규제가 미흡하거나 복잡하여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규제 기관의 감독 및 점검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인재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식 개혁을 넘어선 구조와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다.
첫째 '안전 우선 원칙'의 제도화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최저가 입찰이 아닌, 안전 비용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입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안전 관리 계획이 부실한 기업은 입찰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중대재해 예방하기 위하여 원청 및 발주처가 산업 현장의 안전에 대해 실질적이고 강력한 책임을 지도록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사고 발생 시 처벌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을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예방 중심의 시설 관리 및 투자 확대 역시 중요하다.
안전 인프라 예산 확충을 위해 노후 시설물에 대한 예방적 유지 보수 및 선제적 투자를 확대하고, 안전 관련 기술 개발 및 도입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해야 하다.
전문적인 감독 시스템 구축을 위해 규제 기관은 단순 점검을 넘어, 위험 요소를 사전에 발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현장 컨설팅 및 감독 기능을 수행해야 다.
셋째 자율적인 안전 문화를 조성하는데 지원이 필요하다.
작업자 참여 보장하기 위해 현장 작업자들이 안전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안전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율적 보고 시스템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안전은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제 조건이다. 안전 투자를 비용이 아닌 미래 사회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로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인재가 반복되는 '위험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다.
기고 김효범 : 한국화재감식연구소장, 한국화재폭발조사협회 부회장